인간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고, 또한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 헤맨다. 인류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도 이러한 인과관계에 대한 인간의 집요한 탐구에 기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인과관계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일까? 혹시 인과관계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단지 인과관계라는 '인식의 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간이 그 '인식의 틀'로써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떤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궁금해서 답답하고 속 터지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있지도 않거나 맞지도 않는 원인을 이치나 논리,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한두 가지로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은 대부분 다양한 원인이 다중적이고, 중층적이며,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키면 올바른 통찰도 어려워지고 오류의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더불어 인간은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도 무리하게 인과관계를 설정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주식시장을 들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애초에 원인이 존재하고 그에 의해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먼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해서 '인과관계설정 본능'을 작동시키면, 우리가 사후적으로 원인을 만들어내서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아닐까? 여지없이 칭송 받는 인간의 '논리나 이치'라는 입맛에 맞게 말이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어떤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는다. 그 위를 바닷물이 와서 쓸어 가면 그 발자국은 없어진다. 그리고 그 위를 다시 다른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모래 위에는 새로운 발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인류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끊임없이 발달해 왔다는 것은, 기존의 인과관계라는 인식의 틀에 바탕을 둔 원리나 법칙들이 계속해서 부정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진리나 깨달음, 그리고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법칙을 발견하려는 우리 인간들의 감성적인 지적 모험이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보기에 세계가 인과관계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인과관계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과관계라는 인식의 틀로써 세계를 보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과관계설정 본능'을 열심히 작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