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많은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자행돼 왔다. 비근한 예로, 동티모르 독립전쟁·르완다내전·보스니아내전·한국전쟁·홀로코스트·스탈린의 대학살·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메즈 예게른) 등이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집단학살 중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집단학살 행위에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하나는 학살의 행태가 지극히 잔혹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 집단과 피해 집단이 민족적·인종적·언어적·종교적·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전쟁 전이나 전쟁 중에 자행된 집단학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사건은 ‘제주 4·3항쟁’이다. 약 3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그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고, 또한 그 중 상당수가 부녀자·노약자·어린 아이들이었다.
또한,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민간인이었다. 그 외에도 신천 대학살, 보도연맹 대학살 등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집단학살이 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따져도 그렇다. 물론, 미군에 의한 집단학살도 있었지만, 미군은 직접적인 대면학살보다는 주로 공중폭격이나 함포사격의 형태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집단학살을 한 자체도 비극이지만,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학살의 행태이다. 예를 들어, 여순학살 당시 국군과 서북청년단 등의 우익청년단체들은, 가족들을 총살시키면서 어린 자식들에게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 죽도록 뺨을 때리게 하고서는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또한 근친끼리 성행위를 시키고는 행위 도중 살해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그리고 르완다 내전 등에서도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형태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런데, 왜 먼 관계도 아닌 가까운 관계에서 이런 잔인한 학살행위가 일어나는 것일까? 직관적으로는 가까운 관계이면 오히려 덜(?) 죽이거나, 살살(?) 죽일 것 같은데 말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배신감이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공동체에 속해 있던 집단들이 서로 다른 가치와 이념을 내세우며 분열이 되면, 서로는 상대방 집단이 공동체 성원간의 신뢰에 손상을 가했다고 생각한다. 이때,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은 모르는 사람한테 배신당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한테 배신당하는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회복이다. 동일한 가치와 이념을 공유했던 공동체가 분열되면 서로는 상대에 의해서 자기 집단의 정체성이 훼손됐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훼손된 정체성의 원상회복을 원하게 되고, 그것은 바로 분열되어 나누어진 다른 집단의 존재를 소멸시키면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이럴 경우, 약간의 흔적도 남겨서는 안 된다. 확실한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몸에 난 종기보다는 내 몸에 난 종기 치료에 더 완벽성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상의 비인격화에 의한 자기행위의 정당화이다. 즉, 잔인한 학살행위를 하는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이 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잔인한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행위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잔학한 행위의 대상인 피해자를 비인격화하고, 더 나아가 무생물화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 규범의 틀에서 방면시킬 수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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