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易學)/역학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

삼성과 엘지

아! 2016. 6. 26. 09:20


올해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관점에서 보면 병신년(丙申年)이라고 한다. 이때 병신이라는 글자, 혹은 기호는 나무가 봄·여름을 거치면서 줄기가 자라고, 가지를 뻗치며, 잎과 꽃을 피우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열매를 키워나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 병신년에는 나무가 자신의 에너지를 가지나 잎, 꽃보다는 열매에 집중적으로 공급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이 시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외관보다는 알찬 내실이 더욱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나무는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이나 집단, 개인 등의 주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에너지는 그러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성원이나 자본, 기술력, 노동력 등을 의미한다. 또한 가지, , 꽃 등은 그 주체들의 외형적인 틀이나 규모를 의미하고, 열매는 그 주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과나 이윤을 의미한다.

 

사회의 주체들이 병신년에 알찬 결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갑오년(2014)과 을미년(2015), 불필요한 것들은 제거하고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마무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아직 마무리가 안 되고 지금까지 진행 중인 주체는, 이미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다. , 향후 지속적인 발전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전부터 꾸준히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혁신을 시도한 주체는 내실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주체는 오히려 병신년에 자신의 실력에 합당한 정도로 규모를 키우거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도 문제가 없고, 나중에 좋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병신년에 빚을 청산하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자산 등을 매각하는 주체는, 그 동안 실속 없이 방만한 운영을 해서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주체는 향후에 좋은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병신년에 자산 매입 등으로 적절하게 규모를 키우는 주체는, 그 동안의 꾸준한 노력과 혁신으로 알차고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주체는 향후에 발전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물상적으로 나무에 열매가 맺힌다는 것은, 원래 하나였던 것이 여러 부분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에너지가 분산되는 형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단결력이 약한 조직은 병신년에 구성원들이 갈라져서 조직을 탈퇴하는 등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추진하게 된다.

 

같은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열매가 잘 익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열매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나눠져 있던 조직의 구성원들이 통합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따라서 결속력이 좋은 조직의 경우에는 오히려 병신년에 구성원들이 통합되는 경향을 띤다.

 

이렇게 봤을 때, 병신년에 조직을 분산시키거나 구성원이 분리되어 나가는 주체는 앞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병신년에 분산되어 있던 조직을 통합하는 주체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올해 삼성은 그룹의 대표적인 빌딩 등을 매각하면서 몸집을 줄이고, 부서의 대대적인 변경과 계열사 간 보직 이동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단행중이다. 반면에 엘지는 빌딩을 매입하면서 각 계열사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지금 내가 삼성전자의 주식을 갖고 있다면 감사한 마음을 갖고 거침없이 매도할 것이다. 또한, 지금 나에게 여유 자금이 있다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쓰레기장에 버려진 황금덩어리인 엘지전자 주식을 아낌없이 매수할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안 보일지 모르지만, 대략 향후 10년 후에는 두 기업의 위상이나 주가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나에게는 삼성전자 주식이 단 한 주도 없고, 여유 자금 또한 단 한 푼도 없다. 그리고 나는 삼성이나 엘지와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내 예측이 틀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차피 예측이란 행위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무모한도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