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하고 3일 후, 이승만 정권은 공병대 장교를 시켜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 광진교를 폭파시킨다. 그로인해서 약 800~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나중에, 갈등 속에 그 임무를 수행한 장교는 처형된다.
폭파 당시에도 서울 시내에는 이승만의 목소리로 "우리 국군이 의정부를 탈환하고 북진하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송은 녹음된 것이었고, 정작 목소리의 당사자인 이승만은 대전으로 도망가 있었다.
그 당시 정부와 이승만의 말을 믿고 서울에 남아 있던 약 100만 명의 시민들은, 북한군의 점령 하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되고, 나머지 사람들도 온갖 고초를 겪었다.
미군에 의해 서울이 9월 28일에 수복된 후, 이승만 정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북한군에 부역(附逆)하고 동조한 빨갱이 색출과 처형이었다. 그 당시 많은 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날조·조작·협박 등으로 빨갱이로 몰려 처형됐다. 미안하다고 백배사죄하고 위로해도 시원찮은 판에, 너무나 기막힌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승만 정권의 말을 그대로 믿고 서울에 남겨졌던 사람들은 처음엔 북한군에 의해서, 그리고 나중엔 국군과 경찰에 의해서 죄인 취급을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던 것이다. 순진하고 무지했던 것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한때 나는, 이러한 일들이 과거의 역사적 유물로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옛날이니까, 무지했으니까,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 훨씬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이 시기에, 나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19세기 말 무렵에 독일 국민들은, 그들이 이룬 철학적·문학적·예술적 성취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지적인 사람들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후, 독일인들은 광기에 휩싸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2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전반적인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전체적으로 문명이 더 발달했다고 해서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부유하고, 지적이고, 우아해도 사람이 미치려고 작정하면 별 도리가 없다. 미쳐버리는 것이다.
과연 이승만 정권은 그 당시 무슨 심정으로 한강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을까? 천안함 사건과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는 상황 봐 가면서 적당히 미쳤다 돌아왔다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미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