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의 사주(四柱)를 근간으로 하는 자평명리나 명리기문, 자미두수 등의 사주학(四柱學)은 개인의 운명을 해석하는 술학(術學)이다. 따라서 사주로써 시대나 국가적 상황까지 풀이해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사주풀이를 할 때는 명주(命主, 사주의 당사자)가 처한 시대나 국가에 대한 정보를 참조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적·물적·지리적 환경이나 개인의 노력·선행·수련·긍정적인 마음의 여부 등은 사주로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부분들까지 참조하는 것은 가능하면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술학들의 근본적인 철학이나 이론들이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주해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절한 참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역술인들은 사주 이외의 사전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 역술인들은 주로 의사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의사들도 진료하면서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사전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 따라서 역술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역술인들도 사주학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아니, 더 나아가 사주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역술인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위의 태도는 오히려 사주학의 불완전성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주학에는 역술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쌍둥이사주’에 관한 난제가 있다. 즉, 동일한 사주를 갖은 복수의 명주(名主)들이 다 다르게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역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서 타당성 있는 이론을 펼치거나 주장을 하는 역술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난제에 대한 해결책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답은 있다. 그것은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과 끊임없이 회의하는 자세와도 관련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에 관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쌍둥이사주’ 난제는 사주학의 한계에 관한 문제로, 現사주학의 이론체계로는 절대 알 수 없다.”가 그 답이다. 이것은 사주학이 시간을 성립의 근간으로 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탄생 시점은 무한히 세분화가 가능한 반면, 현재의 사주학은 그 시점을 두 시간 단위로 묶어 범주화하고 있다. 그런데 범주화는 세부적으로 ‘다른 것’을 ‘동일한 것’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필연적으로 범할 수밖에 없다.
비록 쌍둥이라 하더라도 태어나는 시점이 다르니, 서로 다른 우주의 에너지와 힘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그 후 서로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요인이 된다.
그런데 사주학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같은 두 시간의 범주에 들어가는 시점에 태어나면 동일한 사주(혹은 사주팔자)로 판단한다. 그래서 같은 기운을 받고 태어나 살아가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이제는 역술인들이 사주학의 한계와 오류 가능성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그러한 바탕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상담을 하게 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부적을 하거나, 굿을 하거나, 개명을 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조상묘를 옮기거나, 선행을 베풀거나, 기도를 하거나, 수련을 하거나, 좋은 마음을 먹거나, 식이조절을 하거나, 웃음을 잃지 않거나, 노력을 하거나 하면 ‘취길피흉(取吉避凶)’의 개운(開運)을 할 수 있다는-자신과 타인을 모두 기만하는-무지와 착각의 모르핀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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