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표면적인 쟁점은 증거나 증인의 적법성/적합성/진실성 여부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쟁점은 따로 있다. 즉, 어떠한 ‘경향’의 문제를 ‘의도’의 문제로, 더 나아가 ‘근사적 행위’의 문제로까지 확장 해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조직·집단이 어떤 경향을 가진 개인·조직·집단을 임의로 특정하여 관찰하고,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용인된다면 그 사회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생존·권리·자유·표현 등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지배적인 자’들에 의해서 임의로 통제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 양과 질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주인이 머슴에게 먹을 양식을 하사하듯이 말이다.
대체로 일반 시민들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자격의 제약으로 인해서, 개인들이 일일이 사건과 정보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수많은 사건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현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사건의 실체적 사실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서 얼마나 많이 그 사건을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어떤 사실에 대한 보도를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접했을 경우에, 우리는 그 보도 내용에 대해서 판단을 시도한다. 그러나 특정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보도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단을 중지하고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대해서 ‘거짓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식의 조작은 통치행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만약에 지배적 위치에 있는 특정 미디어들이 어떤 사실에 대해서, 단지 ‘경향’의 수준에 있던 것을 어떤 목적을 갖고 ‘의도’의 수준으로 인식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사실을 ‘경향’이 아닌 ‘의도’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증거나 증인의 불법성이나 불합리성, 불완전성이 드러나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지엽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즉, 이번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증거나 증인에 진실성이 부족하고 흠결이 있어 보여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그 사람들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 그런 짓 하고도 남지,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나 증거가 확실하면 좋겠지만 이런 국가 안위가 달린 중요한 문제에서 그런 지엽적인 것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되지, 사람 기억이란 게 딱딱 맞기는 힘들지...”
이런 식으로 법적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증거나 증인 문제가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경향’의 문제가 그 부족한 부분을 슬그머니 채워버린다. 이 상황이 되면 ‘경향’은 ‘의도’를 넘어서 거의 ‘사실 행위’에 가깝게 인식된다. 특정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가 그들이 하거나, 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 행위’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권력집단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내란음모 등의 죄목을 씌워서 기소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특정해서 관찰하고 감시하며, 증거나 증인을 조작하고, 더불어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식의 조작을 병행하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이 사건을 기소한 검사도, 선고한 재판관도, 뒤에서 조종한 집권세력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배적인 집단들의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식의 조작’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통치수단이다. 아무리 총명하고 냉철하며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그물망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잘해야 최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파건 좌파건, 보수건 진보건, 종미/친일이건 종북(?)이건, 이 강력한 통치수단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이번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크게 두 가지 목적에서 기획됐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은 국정원 등의 선거개입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정치적 사망이다. 첫 번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여 진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번째 목적이다.
국정원이나 검찰 등의 국가기관에서는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이정희 개인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체적 비리의 포착은 물론이고 조작이나 날조 등도 여의치 않자, 첫 번째 목적과 연계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정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정치적 보복을 쉽게 떠올리게 하니 그들로서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일 것이다. 이석기라는 적을 이용해서 이정희라는 적을 제거한다. 지금까지는 잘 돼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관상적으로도 이정희는 설화(舌禍)를 심하게 겪을 수 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녀는 너무 예리하고 도량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고 명확하며 기본 심성이 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부디 그녀가 지금의 힘든 상황을 잘 견뎌내서, 나중에 우리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그녀의 좋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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